이옥화, 과학연구에 헌신하며 후계자 육성에 주력한다

성공시대2017-10-10 09:21


동북임업대학 생명과학학원 이옥화 원장


할빈과 같은 한랭지역은 심추도 들어서기 바쁘게 잎이 노랗게 변하면서 우수수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들어낸다. 그리하여 “9월이면 붉은 꽃이 없고, 10월이면 잎 마저 다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동북임업대학 생명과학학원 이옥화 원장(56. 사진)이 거느린 연구진은 추위에 견디며 개화기가 오래가는 내한 국화를 재배해내 할빈시 도시 면모를 개변시켰다.



십년을 두고 칼 한 자루를 간다


길림성 돈화시 태생인 이 원장은 1983년에 옌볜농학원 과수학전업 본과를 졸업하고 1994년에 선양농학원 과수학전업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일본 도쿄대학에서 6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2000년 7월에 동북임업대학에 스카우트되어 교수로 파격 승진했고 2001년에는 박사생 지도교수로 발탁했으며 2003년 동북임업대학에서 생명과학원을 새로 구축하면서 이 교수를 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원장이 동북임업대학에 가입해 계획한 첫 프로젝트가 바로 내한 국화 재배인데 사실 연구 초기부터 곤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설비낙후, 인력부족 등 많은 문제가 앞을 가렸지만 그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먼저 자금을 모아 낙후한 설비부터 개진하고 할빈시농업과학기술원과 협력해 실험기지를 확장했으며 연구경비를 아껴 임금을 올려주는 방법으로 재배 인원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100여개 국내외 국화 품종을 가지고 거듭된 연구를 진행했다.



결국 15년간의 고심 연구 끝해 추위와 가뭄에 견디며 개화기가 오래가는7개 색군 80여개 부동한 국화 새 품종을 재배해냈다.


이 원장은 “할빈은 내한 국화의 이론적 연구를 실제에 접목시키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면서 “과학연구를 사회에 환원해야 그 연구 가치도 더 크기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헤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할빈시 남강구, 개발구 등 주요거리에서  10월 말까지 활짝 피는 국화를 구경할 수 있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내한 국화의 역할은 도시 면모 개변에만 그치지 않았다. 국가 ‘아름다운 향촌’ 계획을 지지하기 위해 이 원장은 타이라이(泰来)현을 빈곤퇴치 대상으로 선정하고 내한 국화 종자와 기술원을 보내 경제적 효익을 올려 타이라이현을 치부의 길로 이끌었다.



과학도 계승이 필요하다


생명과학학원에서 원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이 원장은 교학과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많은 연구 성과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행정관리와 후배 육성에도 신경을 늦추지 않았다.


평소에는 물론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도 젊은 교사나 학생들과 함께 연구실에서 지내는데 가족보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다.


또한 졸업시즌 학생들이 논문을 써 보낸다고 하면 아무리 늦어도 기다리고 받은 즉시 교열하고 수정의견을 제시해주며 졸업생들이 순조롭게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열 성을 다해 지도해주었다.


이 원장은 “과학연구에서 뒤를 이을 마땅한 후계자가 있어야 진보하고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또한 제자들이 연구 영역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빛과 열을 발산해도 교사로서는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지에 대한 탐구는 지금도 계속된다


내한 노천 국화 육종기술 연구개발에 성공을 거두어 한랭지역 채색화 화훼 품종 공백을 메운데 이어 이 원장은 또 생명공학의 방법으로 희귀 약용식물 규모화 생산기술을 개발해내 자주발명 특허 3개를 획득했다.


이 원장의 소개에 따르면 인삼과 같은 희귀 약용식물은 생장주기가 길어 5년 내지 6년의 재배기간이 필요하며 인삼을 심었던 토지는 최소 10년이 지나야 다시 윤작이 가능하다.


이옥화(우3) 원장이 실험실에서 젊은 교사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인삼과 같은 약용식물은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높으며 만약에 토지가 농약이나 중금속에 오염될 경우 다시 재배하기 어렵다.


그는 “일본이나 독일 등 선진국은 20년 전부터 이미 생명공학의 방법으로 약용식물의 산업화를 실현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미생물의 산업화 생산만 가능했지 식물의 생물 반응기(生物反应器)나 규모화 생산 등 면에서 많이 뒤떨어졌다”고 소개했다.


사실 이 원장도 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하여 직접 이용할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상대방이 2000만 위안의 특허비용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설사 2000만 위안의 특허비용을 지불했다 하더라도 최첨단 기술이라는 보장을 받지 못하니 자주적으로 연구 개발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2006년부터 약용식물의 규모화 생산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스테인리스강에다 인삼과 같은 약용식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연구 해냈는데 현재 이 원장의 실험실에 바로 직경이 2미터에 높이가 5미터 정도, 5톤 중력을 가진 어마어마한 스테인리스강 탱크가 있다. 이 탱크는 65일 내지 70일의 성장기한으로 350킬로그램의 인삼을 재배해낼 수 있다.


이 원장은 “규모화 생산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중량이 10톤의 스테인리스강 탱크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10톤 탱크10개의 연간 생산량이 100무 토지의 5년 생산량과 맞먹는다”고 소개했다.


계속해서 그는 “이는 그야말로 산업혁명과 어깨를 겨룰 수 있다”면서 “이 성과를 이룩하기에는 또한 전후 8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현재 획득한 특허 중 2개가 이미 기업체에 이전돼 희귀 약용식물의 대규모 생산에 쓰이고 있어 약용식물의 대규모 생산이  이제 중국에서도 멀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영예 뒤에는 신근한 노력과 헌신이 슴배여 있다


동북임업대학에서 근무하는 동안 이 교수는 많은 영예를 받았다. 2007년 ‘용강학자’ 특별초빙교수로 선정 되었고 2010년 국무원 정부보조금을 획득했으며 2010년에는 흑룡강성 정협위원으로 피선됐다.


한편 국무원 학위위원회 생물공학학과평의소조 성원, 전국 분자생물학농학분회 이사, 중국 원예학회 이사, 흑룡강성 원예학회 부이사장 등 직무를 수행한 적 있으며 현재는 일본 원예학회잡지 편집,  ‘식물생리학신문’ 편집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 저명 학술잡지에 12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며 SCI에 35편이 수록됐다.


이 원장은 “연구 영역에서 한 과제를 돌파하려면 최소 5년 내지 10년 시간을 가지고 연구를 거듭해야 성공을 이룩하는 가능성이 있는데 10년을 하루와 같이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체감할 때가 많다”면서 “우수한 연구인재는 물질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지탱으로 남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후계자 육성을 또한 스스로의 책임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그는 “책임은 일종의 의무이고 영예이며 한 사람의 품격이다”고 말한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현단계 어쩌면 국가발전에 필요되는 과학기술인재를 육성하는 일이 이 원장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이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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