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암은 그에게서 사라졌다... 병이 찾아들때 우리는 어떻게 해왔던가

도랏뉴스2017-10-10 15:14


암선고를 받았던 한 지인의 이야기다. 항암치료로 지쳐있던 그는 병문안 선물로 책 한권을 전해받았다. 책과는 평소 담 쌓고 살다가 입원이라는 원치않는 여유(?)로 일주일 간 독서만 하면서 크게 달라진것이다. 고독, 통증이 지난 후의 공허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면 책과 동무했다. 머리속을 차지했던 필사적인 생존본능이, 어제를 성찰하고 오늘을 아끼겠다는 태도로 바뀌면서 병원살이도 퍼그나 살만해졌다. 얼마 후, 기적처럼 회복된 그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책 읽는 습관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두번째 사례의 주인공은 필자다. 임신 30주에 태아 물혹을 의심한다는 병원진단서를 받은것이다. 마른 하늘에 이보다 뜬금없는 날벼락이 있을가. 더 큰 병원에 련락했더니 환자가 많은 연고로 한달 뒤라야 검진받을수 있다고 했다. 옆에서는 그새 애를 낳을지도 모르잖냐며 핀잔했고 나는 맥이 빠지면서 눈물이 났다. 담당의사는 초음파 오류도 많다며 3주 뒤 재검진하자고 했다. 그로부터 3주가 꼭 30년처럼 흐르는 사이, 내 꿈은 ‘그저 흔한 엄마’로 소박해졌다. 다 필요없으니 부디 건강한 아이이길, 오매불망 바라는것은 오직 그 뿐이였다. 3주 후, 이상소견이 없다는 진단서를 받았고 짓누르는 안도감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안타까운건 그때의 감사함을 완전히 유지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건강함에도 만족할줄 모르는 자신을 보면서 내 안의 간사함에 가끔씩 전률할 때가 있다.  



그래서 W.NL 영안은 “질병은 인생을 깨닫게 하는 훌륭한 교사”라며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중요한걸 더이상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는지도 모른다.


질병이라는 위협을 맞닥뜨리다 보면, 몸은 격렬하게 반응하는데 반해 마음은 대개 부드러워진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오만과 질투는 그저 감정랑비일 뿐이다. 눈치없는 시누이는 무시하고 상사의 속사포 욕은 려과해 들으면 그만이다. 삶이 얼마 남지도 않은 판에 싸우는데 급급할 여유는 없다. 하여 병이란 우환을 가장한 선물인 셈이다.


사례1의 주인공은, 평소 개 닭 쳐다보듯이 하던 지인이 병원으로 찾아와 두손을 잡아줬을 때의 온기를 잊을수 없다고 회상했다. 마지막 만남일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더란다. 세상을 비뚤게 보고 옴니암니 따지다보니 매일 열받는데만 익숙해져서 체내 암세포도 커진것 같다는 자가 분석도 곁들였다. 살수만 있다면 작은것에 일희일비하거나, 재고 따지며 미워했던 어제와 작별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또 어떤가. 소소한 하루에 감사해야 함을 자각한건 지옥문을 관통했던 3주의 시간 덕이다. 욕심으로 마음이 마구 다급해지면 그때를 재삼 떠올린다. 지금의 안일함이 한때는 ‘꿈’처럼 갈구하던 일상임을 상기하고나면 허황한 욕심도 조용히 사라진다.



병이 반갑지 않은 리유는, “이로써 난 행복과는 영 멀어질테지”라는 통상적인 사고 때문이다. “이제 끝났어!” 창졸간에 자포자기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세상은 여차여차하게 아름다우니 꼭 오래 살라며 부추기는 매스컴의 설파에 마음은 더 아득해진다. 안그래도 아픈 몸이 걱정과 분노로 재탕 삼탕 소진되는것이다.


반대급부로 앓으면서 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운전으로 치면 ‘질주’하던데서 ‘드라이브’로 속도를 줄이는 셈이다. 이런저런 풍경을 관찰하면서 이젠 다르게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생각이 풀리면서 몸까지 좋아지는 횡재와 마주치지기도 한다.


혹자는 “그게 생각처럼 되냐”며 웃을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불청객인 ‘병’, 하지만 그런 깨달음마저 없다면.  


/렴청화 연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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