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수기] 사랑의 유효기

민족교육2018-09-11 09:51


방학 첫날, 긴장했던 마음의 탕개를 늦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나 오늘 블루베리 슬러시 마시며 한학기 피로 확 풀었어. 너무 시원해. 당신도 한잔 해드시구려."


게다가 친구는 침샘을 자극하는 사진까지 한장 보내왔다. 그래 나도 피로를 풀어보자. 나는 바로 여러가지 과일을 찾아 씻고 자르고 믹서기에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우유를 집어들고 넣으려다다가 습관적으로 유효기를 들여다보았다. 어마나, 유효기가 딱 하루 남아있었다. 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우유를 쏟는 순간 아, 나의 교육생애도 이 우유와 같이 유효기가 몇년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20살 꽃나이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을 마주하고 울고 웃던 때가 어제같은데 벌써 퇴직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였다.


세월이 류수와 같이 흐른다더니 손꼽아 세여보니 다섯번의 대순환으로 운명처럼 만났던 애들의 얼굴이 영화필림처럼 획획 스쳐지나갔다.


공주같이 귀여운 얼굴에 애교가 찰찰 흐르지만 공부에서만 누구한테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매화, 청이가 크면 선생님께 옷 사주겠다고 하니까 자기는 큰 비행기를 사주겠다고 큰소리 치던 영덕이, 성격이 불같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해 중학교에 가서 어쩌다 길에서 만난 선생님을 반갑다고 훌쩍 들어 빙빙 돌려주던 영걸이, 지금까지 이런 애들이 나의 인생을 동반하였기에 나의 삶이 하루하루가 지겹지 않고 즐거웠던것 같다. 철부지 코흘리개들이다보니 애도 많이 먹이고 속타던 일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 다 떠나보내고 나니 애나던 일보다 즐거웠던 일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나의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착각한 반급의 아이디어왕 문숙이의 제의로 받은 아이들의 생일축하 편지를 읽을 때의 그 기쁨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이 우리들의 생일을 챙기시고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주셨는데 이젠 저희들이 선생님의 생신을 축하해드리겠습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오늘 하루 만큼은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즐거운 일이 가득 하길 바랄게요." "…지금 제가 좀 많이 뚱뚱해졌어요. 그래도 선생님을 안으려 할 때 피하지 않고 절 안아주실거죠? ㅎㅎ…" "…선생님께서 글을 곱게 썼다고 나의 얼굴을 만져주던 그 따뜻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애꾸러기 저 때문에 선생님 속을 많이 썩이게 해서 참 죄송합니다. 이번 생신을 맞아 속상했던 일들을 다 잊으시고 행복한 날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생일선물이다.


교사절날, 애들이 소비돈을 모아 산 사탕으로 교실에 들어서는 선생님한테 사탕폭탄을 안겨주었던 귀요미들, 이때 만큼은 내가 백만부자가 된 기분이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세상에 완전완미한 것이 어디 있으련만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이 마음 한구석을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밀어낼 수가 없다.



네번째로 내가 맡은 학급에는 뇌성마비로 사지가 불편했던 아이가 있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손이 뒤틀리여 연필도 바로 쥘 수가 없는 아이였다. 신체적장애는 있지만 머리만은 똑똑한 아이였다. 어느 한번 흑판보에 붙인 애들의 수공작품을 누군가 손으로 문질러서 망가뜨려놓았다. 처음에는 어느 개구쟁이 노릇이겠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이 아이의 작간이였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만든 것을 붙여주지 않아서 그랬다고 밝혔다. 엉망이여도 열심히 만든 자기 것을 붙여주지 않은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친구들에 대한 질투였다. 그 때 좀 더 그 아이에게 눈길을 주고 아픈 마음을 다독여주었을 걸 하는 후회와 아픔이 지금도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라는 말처럼 한편 아직 유효기를 달리고 있는 나의 교육생애를 생각하면서 다소 위안을 느낀다. 그러면서 매일을 나의 인생의 마지막날처럼 조금이라도 후회되는 일이 없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의 도장을 마음 깊숙이 꾹 박아찍는다.


그렇다. 식품에는 유효기가 있지만 사랑에는 유효기가 없다. 사랑은 내가 마음먹은 만큼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끝없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말라가는 애들의 심령을 촉촉히 적셔주는 한줄기의 샘물이 되여주고 상처받은 령혼을 치료해주고 아물게 하는 특효약이 되여주며 언제 어디서든 길을 잃지 않고 옳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망망한 바다의 등대가 되여주련다.





/김옥란(녕안시조선족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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