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수기] 마지막 기념비

민족교육2018-11-15 10:02

마지막 기념비

류정남

 


몇해 전 로모의 한국친척방문수속을 하기 위해서 고향행차를 한 적이 있었다.


떠난 지 십여년 잘 되는 고향마을에는 나의 모교이면서 내가 교원사업을 했던 학교가 있다.명칭이 동풍소학교였던 옛 시골학교는 내가 어릴 때 다녔던 소학교였고 또한 내가 고중을 졸업하고 근 십년간 교원사업을 했었던 학교이다.어릴 적 나는 동풍소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현성교구에 위치한 림구현조선족중학교에서 고중까지 다녔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는 림구현조선족학교라는 교명으로 바뀌여 유치원,소학교,초중이 련합되여 운영된다고 한다.학교정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글픈 감회가 끓어번지기 시작하였다.국기게양대도 예전처럼 하늘높이 치솟아있고 업간체조 체조대도 운동장 앞에 덩그렇게 놓여있었지만 즐겁게 뛰노는 애들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복도와 교실은 정갈하고 아담했지만 애들의 웃음소리를 통 들을 수 없었다.아니,이게 바로 내가 다니던 그 학교였단 말인가?이게 정말 내가 사업하였던 전 현에 이름났던 그 학교였던가?당시 소학교문예대는 목단강지구급경연에 참가하여 여러 번 대상도 받았고 겨울방학 때면 전 현14개 조선족촌에 순회공연까지 다니군 했었다.이 학교의 학교축구팀은 전 현을 대표하여 지구급경기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으며 많은 우수한 졸업생들이 청화대학,할빈공업대학에 입학하는 영광의 력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마치도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강마른 할머니체구를 보는 것 같은 가슴아픈 모습이였다.교원13명에 전교생은 통털어 10명 좌우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외국에 나간 거지?”전반급에 한명 뿐이라는 소학부 녀학생한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하두 오래 전 일이 돼서….


나는 목이 메여 조금 뜸을 들였다가 한마디 롱을 걸어서라도 딱딱해진 분위기를 완화시키려 했다.


“전반급에 한명 뿐이니,네가 바로 반장이구,공부도 일등으로 잘하겠구나.




“교장선생님께서 뭐라는지 아세요?제가 이 학교의 마지막력사를 새기는 기념비로 남을 거래요.


녀자애는 나이에 비해 천진했다.



나는 나의 작품집《청화대학 꿈을 이루기까지》를 한권 꺼내여 녀자애한테 주었다.


“이 사진 속 사람이 누구인데요?


녀자애는 책표지에 올린 나의 아들애사진을 가리키면서 물어왔다.


“이 학교를 다녔던 류청이라는 애인데 지금은 어엿한 청화대학 학생이란다.




“네?와― 우리 학교를 다녀도 청화대학에 갈 수 있어요?


“그럼,될 수 있구 말구.노력만 한다면야 세계제일의 대학에도 갈 수 있지.너도 이제 될 수 있을 거야!


나의 말에 녀자애는 두손으로 책을 소중히 받아쥐고 가슴에 꼭 갖다대는 것이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요.마지막 하나 남은 애라고 해도 여전히 우리 민족의 후대이고 새싹이 아니겠습니까?지금 우리 교원들도 이 학교의 마지막 기념비로 남을 각오가 돼있답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말에 감복이 되였다.그렇다.악렬한 환경에 봉착했을수록 우리 민족의 어린이들한테 역경을 이겨내는 강인한 성격을 길러주고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지식전수만이 아닌 인간성,민족의 얼과 기상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장원하고 진정한‘교육’인 것이다.




그날 고향의 모교에 다녀온 후부터‘마지막 기념비’로 남을 각오가 돼있다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가끔씩 내 가슴을 두드리군 한다.


이제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고향의 언덕에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을‘마지막 기념비’에는 하얀 넋이 고스란히 살아 숨쉴 것이다.그리고 전반급의 유일한 학생이였던 그 녀자애가 부르던 노래도 여전히 울려퍼질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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