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이 그립다

글소리2018-11-20 09:24

숭늉이 그립다

허미령



숭늉, 숭늉은 신세대 조선족들의 절반이상이 잘 리해하지 못하는 단어, 지어 들어보지도 못한 귀에 생소한 단어이다.


내가 만약《조선말사전》편집이라면 숭늉을 이처럼 해석할 것이다. “숭늉은 명성이 없어 그 제조자들의 후손들마저 모르는 우리 민족의 슬픈 력사유물이다.”라고.


우리 민족 숭늉은 세계를 휩쓰는 미국의 브랜드 코카콜라처럼 입맛을 자극하지도 못하고 프랑스의 와인처럼 투명하고 깨끗하지 못하기에 명성이 없어 그 제조자들의 후대들마저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시원하고 구수한 맛 때문에 오로지 한끼 식사후의 입가심이나 하는 그런 “덤” 밖에 안되는 존재다. 정말 지금 새시대들이 추구하는 개성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 제조과정마저 백치가 아니면 다 해낼 정도로 간단하기에 숭늉을 한고뿌씩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현대화사회에 들어서서 전기밥가마라는 “신식밥가마”가 주방을 차지하면서 숭늉이란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늙은 세대들은 아직도 숭늉맛이 그리워 전기밥가마에 누룽지를 붙이고 물을 부어 우려내 마셔보기도 하지만 입에 숭늉을 가져다대는 순간 미간을 찌프리며 그제날 쇠가마에 물을 부어 우려마시던 숭늉맛을 그려보며 아쉬움과 막무가내를 금치 못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밥을 다 짓고 가마밑굽에 붙은 누룽지가 아까워서 물을 부어넣고 다시 우려내서 만들어진 숭늉… 내가 처음 숭늉을 맛보게 된 것은 그 무슨 숭늉의 구수한 맛을 알아서가 아니라 기름진 진수성찬에 속탈이 났을 때 할머니가 숭늉을 마시면 속을 달랠 수 있다기에 한공기 마셔보았다. 숭늉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볼품없는 겉모습과는 달리 구수하고 시원함이 목구멍으로부터 가슴속까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때 그 한모금 숭늉맛에서 나는 우리 조상들의 절약정신과 삶의 지혜, 사치를 부리지 않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그 풋풋한 인정과 삶의 자세를 엿볼수 있었다.




숭늉은 고급스럽다. 그 겉모습(‘음료’로 말하면 숭늉보다 더 초라한 것은 없는 것 같다.)이 고급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내심속 깊이 함장된 깊고 진한, 미각과 후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 삶의 자태가 고급스럽다. 겉모양은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지만 내속은 “지혜”가 가득차 삶에 대한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그 맛을 유지해온 숭늉, 어쩌면 그 모습, 그 처지가 선조들과 그리도 흡사하다.


숭늉은 가난을 불행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욕망을 버리고 주어진 것들을 사랑하며 삶을 조용하더라도 가치있게 보내라는 우리 조상들의 부탁이 담긴 유언이다. 허나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 후대들이 이 숭늉속에 녹아있는 조상들의 삶의 부탁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부단히 발전해짐에 따라 높아지는 주택들, 허나 우리는 태양에 비낀 그 고층빌딩들의 점점 길어만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생활이 부유하다하여 돈으로, 물질로써 마음을 위로하려는 것은 우리 백의민족 후손들이 가져서는 절대 아니되는 마음의 자세이다.


날따라 소실되여가고 있는 “숭늉”의 향기, 우리 선조들이 초심을 잃지 말고 마음을 비우며 항상 속을 들여다보고 조용히 살라는 민족의 향기, 오로지 우리 조선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숭늉맛이 사무치게 그립다. 구수하고도 향긋한 숭늉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시험장에 숭늉냄새가 감도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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