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작문] 할머니와 나 그리고 오리풀

학생작문2018-11-28 09:50

할머니와 나 그리고 오리풀


김련하


색바랜 구들우의 한쪽켠 장판은 담배불에 그만 보기 흉한 곰보가 되고말았다. 그 자리는 할머니께서 병으로 누워계시던 자리이다.


우리 할머니는 생전에 담배를 몹시 피우셨다. 듣는 말에 의하면 젊어서 바가지에 랭수를 떠놓고 눈물 흘리며 담배를 피우셨다고 한다. 그후로 더는 담배를 끊지 못하고 그렇게 일생동안 피워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보아온 할머니는 언제나 지팽이와 하나로 되여있었다.



1


할머니와 나는 같은 소띠였다. 어려서부터 난 부지런한축이였고 남자애들처럼 성질도 시원시원하였다. 하여 이 손자 같은 손녀는 할머니의 보배덩이였다. 그만큼 나도 할머니를 제일 좋아하였다. 한생을 일로 늙어오신 할머니인지라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였다. 여름날이면 매일이다싶이 지팽이를 짚고 오리풀을 캐러 나섰다. 그러면 난 언제나 할머니의 가장 충실한 그림자가 되여주었다. 때론 가기 싫을 때도 있었지만 혹시 지팽이를 짚고 가시다가 넘어지면 어쩌나 싶어 나는 늘 따라나서군 하였다.


오리풀은 캐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고약한건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이였다. 한 반바구니쯤 캐고나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군 하였다. 그러면 할머니와 나는 밭고랑에 그대로 앉아서 한참씩 휴식하군 하였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시며 저 먼산을 바라보시다가 땀이 거의 식어가면 구수한 옛말들을 척척 잘도 엮으셨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 빙글빙글 춤추며 둥글소가 무지개 타고 내려왔단다. 그건 신선이 변한것이였지… 둥글소는 마음이 착하고 일하기를 즐겼기에 가난한 집의 농사일을 많이 도왔단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소띠들은 다 둥글소의 후예란다…”


옛말이 끝나면 기분좋은 날엔 잇달아 타령이 시작된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좀 보소…”


집에선 전혀 볼수 없는 할머니의 활달한 모습이였다. 때론 앉은채 들썽들썽 어깨춤까지 추셨다. 그때면 나는 흙냄새에 풀향기에 타령소리에 저도 모르게 폭 취하고만다. 하지만 때론 예상치 않던 돌개바람이 불어칠 때도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한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서 품에 꼭 안아주셨다.


오리풀을 한광주리에 가득 넘쳐나게 캐면 땅거미가 어슬어슬 찾아들었다. 그러면 우리도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하늘을 붉게 태우는 노을을 등지고 옥수수가 빼곡이 들어선 밭을 지나 오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지팽이를 짚은 할머니와 커다란 광주리를 든 손녀가 서로 의지하며 귀로에 오른 모습… 이 가장 소박하지만 또 가장 사랑으로 충만된 화폭은 영원히 기억속에서 퇴색하지 않을것이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할머니와 손녀의 사랑은 밭언덕 따라 높아갔고 오솔길 따라 길게 길게 뻗어만 갔다.



2


류수같이 흐르는 세월은 참 무정도 하였다. 하늘도 무심했다.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고 다니시는 할머니한테 두번째로 중풍을 안겼다. 한쪽으로 마구 비뚤어지는 할머니의 입을 보며 나는 감히 울지도 못하고 어찌할바를 몰라 뒤산으로 뛰여갔다. 그땐 처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느낌이였다. 3일동안 꼬박 치료하여서야 할머니의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의 목을 그러안고 오래도록 목놓아 울수 있었다. 몹시 괴로왔을텐데 할머니는 자애롭게 웃으시며 내 등을 가볍게 다독여주었다. 그때 난 8살이였고 할머니는 63세였다.


그후로 할머니는 팔힘으로 앉은걸음을 하는수 밖에 없었다. 바깥출입을 못하는 몇년 사이에 할머니는 퍽 늙으셨다. 많은 시름과 고통과 육체적, 정신적 외로움을 홀로 감내하셔야 했다. 늘 바람에 날리는듯한 파파머리를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것이 거의 전부의 일과였다. 포동포동하던 오리들도 팔아버린지 옛날이 되였다. 오리풀을 캐러 손 잡고 다니던 할머니와 손녀의 행복한 모습도 지나간 추억으로만 남았다.


나이가 많아지면 늙고 병들고 하는건 어길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많아질수록 도리여 어린애처럼 된다는 인생의 섭리를 몰랐다. 할머니는 정말 전과 달라졌다.


머리맡에 담배를 두고도 재떨이를 뒤적여 남이 피우다 던진 꽁초를 찾아 피웠고 아이들이 손에 먹을것이라도 들고 오면 “게 뭐고? 나두 좀 다구. 어서…” 하며 손을 쑥 내밀었다. 뿐만아니라 밥상에 앉아서 입안의 밥알을 툭툭 튕겨낼 때가 많았다. 그리고 주책없이 밥상에 대고 재채기를 하기도 하였다. 인내성도 없어졌는지 밤낮 신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친척들이라도 오면 일부러 더 큰소리로 신음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이상했고 싫었고 민망스러웠다.



3


인간의 감정이란 서로 통하기는 어려워도 갈라지려면 너무 쉬운가보다. 어느덧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였다. 집을 떠나 숙사생활을 해야 했기에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휴식일에 집으로 가면 할머니는 고정된 격식으로 “어이구, 우리 련하가 왔구나.” 하고 엉엉 가짜울음을 울며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두, 울긴 왜 자꾸 울어요?” 나도 고정된 격식으로 이렇게 단마디로 내뱉고는 내 방으로 휭하니 들어가버렸다. “얘, 련하야…” 엎어질듯 길게 내민 손도 나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방학날이였다. 한창 진지하게 드라마를 시청하고있는데 “련하야? 아이구 련하야, 빨리 이리 좀 와다구!” 하는 할머니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무슨 큰일이 났나싶어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할머니방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 밸이 울컥 치밀어 올라 아니꼽게 쏘아붙였다.


“아니, 아무 일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굴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도리여 빙그레 웃으며 손짓하는것이였다.


“얘야, 이 할미곁에 좀 오렴? 오너라, 와. 어서.”


그러면서 꼬깃꼬깃 접은 돈 2원을 내밀었다.


“련하야, 이걸 갖고 가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삥좐을 사먹어라. 그리구 이후엔 이 할머니한테 좀 자주…”


“아참, 내가 아직두 할머니 따라 오리풀 캐러 다니던 아인줄 아세요? 참 웃기네! 걷어치워요!”


나는 있는 힘껏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다. 그후로 할머니방에 거의 가지 않았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할머니와 손녀사이의 정은 바람따라 세월따라 버성겨지기 시작했다.



4


드디여 개학날이 되였다. 피끗 머리만 들이밀고 “오늘 학교 갑니다.” 하고 한마디 던지고 쫓기듯 나와버렸다. 등뒤에서 할머니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련하야, 공부 잘… 공부…”


그리고 나는 집과 련계를 거의 하지 않았다. 공부도 공부려니와 할머니한테 문안 전하는게 싫었던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깊은 잠에 빠졌는데 전화벨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어머니였다.


“련하니? 할머니가 지금 운명하신다! 오늘저녁을 넘길것 같지 못하니 빨리 집으로 오너라.”


“예? 뭐라구요? 할… 할머니가?”


“련하야, 할머니는 지금 니 이름만 부르고있단다. 들리니?”


“련하야, 련하야?”


수화기에서 할머니의 기복이 심한 애처로운 부름소리가 들렸다. 가슴 아프게.


밤차를 타고 집에 이르렀을 때 할머니는 이미 턱이 떨어져있었고 “헉헉헉―”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후닥닥 뛰여올라가 할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할머니! 련하가 왔어요. 할머니!”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얼마 안되여 할머니의 머리가 한켠으로 툭 떨어졌다. 눈가에는 한가닥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할머니! 할머니! 아무리 땅을 치며 웨쳐도 이 세상을 떠난 할머니는 더는 대답이 없었다. 아!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의 힘을 다하여 이 못난 손녀를 불러주셨다.



5


꽁꽁 얼어붙었던 눈덩이들도 끝내는 녹기 시작했다. 소생하는 만물가운데 오리풀들도 뾰족뾰족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매양 할머니를 생각하노라면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가 된다. 미안했던 일, 참회하고픈 일, 그 모든게 눈물에 젖어 땅속으로 흘러든다.


할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다. 아픔도 고통도 헤여짐도 없는 세상에 계신다. 혹시 할머니는 지금쯤 또 그 “둥글소 신선”의 이야기를 하실지도 모른다.


아, 할머니! 또 봄이 왔어요. 우리 함께 오리풀을 캐러 갈수 있는 계절도 곧 올겁니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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