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수기] 배움의 부메랑을 던지며

민족교육2018-12-27 09:48

배움의 부메랑을 던지며


오상조선족중학교 리련화



주사위는 이미 던졌다. 인생길에서 갈팡질팡한 나이를 지나 이젠 교육의 길로 다가간다. 수줍은 걸음으로 다가가 이 길의 첫발자국을 남기며 또 조심스레 한발짝한발짝 앞으로 다가간다. 이젠 5년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거쳐 더 대담하게 더 씩씩하게 앞으로 다가간다. 단지 시간으로 채워질 수 없는 배움을 가르치면서 또 배움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한다.




아침 출근길에 귀에 익은 전화벨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나야, 지금은 다 애들 하나씩 키우는데 학생들한테도 너의 친 자식대하듯 잘 대해주고, 학교 선생님들도 너보다 년세가 많으시잖니, 그러니 너가 많이 도와주고 말도 잘 듣고 일도 많이 해야지. 엄마말 꼭 명심해야 한다“. 나는 “예~ 아침부터 조언 주셔서 감사해요. 저 이제 반급에 들어가야 돼요. 애들이 어문시험치거든요~“ 하고 총총히 반급으로 향했다.


대학입시가 코앞인지라 애들의 얼굴에서도 다소 긴장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빠르게 시험지를 발급하고 나도 걸상에 앉아 시험 감독을 시작하였다. 눈앞에 '대학입시전14일'이란 글자가 눈에 띄였다. ‘대학입시가 두주일 밖에 남지 않았구나. 왜 이렇게 빠르지? 고1에 와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가르치기 시작한지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대학의 문턱에 들어서게 되다니…’이런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학생들의 필 놀림을 보면서 나는 어느덧 나의 학창시절로 사색의 길을 걸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 태여나서 나는 고중2학년 때부터 학업을 중퇴할 위기에 처했다.


“여나야, 지금 세월은 공부도 돈 있는 집의 자식이 한다고… 엄마도 아프지, 아빠는 손재간이 없어 돈을 못 벌지… 아빠가 중국에서 경비일을 하며 한달에 고작 1500원으로 어떻게 너를 공부시키겠니?“


공부의 열정은 품고 있지만 뒤떨어진 가정형편에 할 수 없이 담임선생님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저 공부 그만 둘래요. 더 이상 견지못하겠어요.“ 갑작스런 말에 담임선생님께서 “왜 갑자기 공부 그만두지? 다른건 선생이 물어보지 않을게. 하나만 물어보자. 너 공부 계속하고 싶어? 이것만 대답하거라.“라고 어정쩡하여 물어보신다. 나는 “공부는 당연히하고 싶지요. 그런데…“ 말끝을 흐리며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럼 됐어. 선생님이 학교에 얘기해서 이제부터 너의 학비랑 다 면제하게 할게. 먼저 들어가 공부해“. 담임선생님의 고마운 말씀이였다. 이로서 나는 배움의 행운아가 되여 꿈에도 그리던 대학 캠퍼스에 입성하게 되였다. 선생님의 아낌없는 사랑으로 나의 인생이 달라진것이 아닌가?




대학시절, 여러가지 청춘 콤플렉스로 힘들고 지칠 때가 많았지만 나만의 쉼터가 있었다. 그것은 7층 도서관에 가서 문학산책을 하는 것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교 1학년 글짓기 수업에서 “선생은 지금도 항상 이 작은 목책을 수시로 들고 다녀요. 뭔가 느낌이나 글감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적습니다. 새벽에 생각나면 일어나서 바로 적고 또 잡니다…“ 류연산 교수님의 말씀이다. 류선생님이 한번은 나더러 전반 앞에서 나의 작문을 읽어라 하셨듯이 나도 매번 시험을 치른 후에는 작문을 잘 쓴 애보고 앞에 나와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자고 한다. 나는 “동무들, 대담하게 새로운 발견을 해서 좋은 글을 속속 써나가는 길, 이게 문학쪽에 흥취가 있는 학생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라고 오늘도 이런 말을 종종 하군 한다. 또한 우리 문단의 큰 봉우리인 김학철선생은 인생의 파란곡절을 다 겪으시고 만년의 문학의 원정을 견지하셨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不义)에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라는 그의 유언으로부터 그는 언제나 삶의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이 세상의 불의와 한평생 싸우면서 문학의 길을 걸어가셨다는 것을 알수 있다. 현시대의 젊은 조선어문 교원으로서 필을 들고 그 분과 같이 학문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한 학생의 걸상 삐걱소리에 사색에서 벗어나 현실에 돌아왔다.


이번 학기의 어느 하루, 하학시간에 몇몇 녀학생이 모여앉아 사이좋게 뭔가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내가 슬그머니 다가가서 보니 참 예쁘게 생긴 주먹밥이였다. ‘와~ 애 엄마가 된 나도 이렇게 못하는데 참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하며 “이 주먹밥 세나가 만들어 온거니? 어떻게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만든거야? 나도 좀 가르쳐 줘.”라고 말했다. 나의 청에 “선생님, 이거 만들기 쉬요. 먼저 김치를 촘촘하게 썰고 동원참치랑 같이 볶아요. 그리고 밥, 참기름, 소금, 참깨를 혼합해 밥을 만들어요. 관건은 이 밥을 동그랗게 펴고 전에 볶은 김치참치를 속에 넣고 오무려요. 마지막에는 김가루를 뿌리면 완성이예요.” 학생의 '가르침'대로 저녁 메뉴를 주먹밥으로 정했다. 그날 저녁 온 집식구의 입이 호강을 했다. “나보다 먼저 나서 나보다 먼저 도리를 깨쳤으니 나는 그를 스승으로 삼고 나보다 후에 났더라도 나보다 도리를 먼저 깨쳤으면 나는 그를 스승으로 삼는다”고 생활에서의 배움은 오히려 애들한테서 더 많이 배우는 중이다.




이번 학기는 정말 앞만 보고 달리는 느낌이였다. 대학 졸업 후 첫번째로 고중 3학년을 맡았기에 긴장해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더 효과적으로 하고 성적을 제고시키고 학생들더러 지식점을 확고하게 기억하게 하겠는가 고민이 많았다. 옆에 계시는 경험이 풍부한 한어문선생님이 나의 '짝궁'이시다. 하루는 동시에 시험지를 내게 되였다. 나는 원래의 있던 기초지식문제를 조금 변형시키고 과외열독문제 2개를 모의시험의 것을 복제하여 틀에 맞췄다. 건성건성으로 문제류형에 따라 내니 반나절에 다 완성하였다. 옆의 선생님을 보니 아직도 돋보기를 걸고 하나하나 꼼꼼히 생각하고 문제를 내고 고치셨다.  “선생님, 선생님은 시험문제를 낼 때 어떤 생각들을 하고 내나요? 저는 그냥 문제류형에 따라 재료를 찾아 틀에 맞춰 내는데요. 다른 생각은 없어요.” 나의 물음에 선생님은 “한 문제도 다 심사숙고하지. 난이정도가 애들한테 적합한지, 오타가 있는지, 배운 범위내의 것인지, 점수 비률이 적합한지 등등 문제들을 생각하지. 그리고나서 나중에 도표형식으로 어느 학생이 틀렸는가까지 체크하면서 시험총결을 짓는거지. 한차례의 시험을 통해서 또한 자신이 평소에 어떤 부분에서 소홀히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단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순간 나는 쥐 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성격이 꼼꼼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이건 태도문제인 것이다. 나는 다시 한문제 한문제 체크하며 문제를 다시 점검하였다. 마지막 타자가 끝난 뒤 나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젊은 교원이 로교원한테서 받은 사업에 최선을 다 하는 긍정적 에너지였다. 앞으로의 나도 사소한 일 하나에도 심사숙고하고 생각을 깊이있게 하는 로교원의 멋진 태도를 닮아가고 싶다.


이렇듯 나의 굴곡한 배움의 길도 있었지만 다행히 행운의 '요정'들이 곳곳에 나타나 나를 앞으로 밀어주고 있다. 나는 배움에 열정을 품어왔고 노력도 해봤고 이젠 정식으로 이 길을 향해 진심모아 약속한다. 배움의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끝까지 걸어가보겠다고.


6월의 바람은 계절의 규칙을 따라 꽃가루와 스치며 향기로운 향기를 품기며 찾아온다. 나는 손을 힘껏 휘저으며 따뜻한 바람에 몸을 담고 하늘을 향해 배움의 부메랑을 힘껏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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