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수기] 거울글자의 달인

민족교육2019-05-09 10:09


치치할시조선족소학교 리연춘



한학기를 마치면서 일학년 학생들의 지식점검이 있었다. 시험지를 검사하면서 이런 현상을 발견하게 되였다. “팥죽”을 “팥족”으로, “이튿날”이  “ㅣㅇ튿날”로 씌였던 것이다. 이번 뿐이 아니다. 평시에도  “3과6” , “ㅏ와ㅑ” 등을 거꾸로 쓰는 애가 있었다. 참 미스트리한 현상이라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번에도 이렇게 쓴 걸 보니 강조해서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봤던 책에서 온전한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다빈치도 왼손잡이였으며 이상하게도 글자를 거울에 비쳐야만 알아볼 수 있도록 거꾸로 글자를 쓰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호기심을 풀어보려고 인터넷에서 진지하게 검색을 해봤더니 나처럼 의문을 가진 학부모들의 댓글도 있었고 이렇게 글자를 쓰는 애들이 간혹 있다고 했다. 이런 애들이 쓰는 글자를 “거울글자”라고 한단다. 더 검색을 해본 결과 해석은 이러했다. 애들이 일부러 골탕먹이려고 쓴다는 글자는 “거울글자”로 애들이 성장에서 정상적인 현상이며 그 원인은 감각계통실조(感觉系统失调)의 일종표현이라고 한다. 어린이의 각종 감각 즉 청각, 촉각, 후각 등 외계의 반응이 정확히 대뇌에 전달되지 못하여 대뇌가 어린이의 사지활동을 령민하게 지배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4살좌우의 어린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소학단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대뇌가 성숙됨에 따라 이런 현상이 차차 없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알고 보니 우리 애들이 “거울글자”의 달인이 된데는 다 원인이 있었구나 하고 리해를 해주고 깎인 점수가 애매하다고 변명하고 싶어졌다. 예닐곱살짜리 애들이 대뇌의 발육부진으로 지식접수가 정확하지 않았는데 부모나 교원이 원인도 모르고 강요한 것이 어쩌면 잔혹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학교에 입학한 일학년학생들은 한학기 정확히 말하면 넉달만에 우리말 받침이 들어간 비교적 긴 과문인 〈무우당기기〉 과문을 숙련하게 읽고 과문에 나타난 요구하는 단어까지 정확히 써야 한다. 읽기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철자를 바르게 쓰는 것이 좀 무리라고 생각되였지만 교학진도에 따라 임무를 완성해야 하니 억지로 밀어부치기도 하였다.



스스로 접수되지도 리해되지도 않는 지식을, 년령특점에 맞지 않는 량에 넘치는 지식을 우리 학생들은 쭉 이어서 지식의 선두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사실이 어쩌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에 스스로 공포감을 느낀다. 흙속에 묻힌 씨앗도 며칠 동안 끙끙 앓아야 새싹으로 뾰족 머리를 내밀고 긴긴 겨울 옴츠렸던 살구나무도 봄이면 어김없이 뽀얗게 몸서리치는 흰꽃으로 하늘을 메운다. 꽃잎이 다 스러지고 나면 이어서 잎들이 나무가지를 단장시키고 푸르름으로 대자연을 단장시킨다. 자연의 순리는 기다릴 줄 아는 우리 인간은 뭐든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고집스레 갖고 있는듯하다. 다섯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어린애더러 피아노를 치게 하고 청각이 여린 어린애가 음악공부를 한답시고 드럼을 요란히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늘여놓지 않으면 펴지도 못한다고 두다리가 째지게 일자(一字马)로 곧게 펴는 혹독한 훈련을 가한다. “나도 어렸을 때 이런저런 걸 다 해보고 싶었는데 무식한 부모, 가난한 부모를 만나서 못했다. 우리 애가 나를 원망하지 않게 내가 해줘야지.” 아주 떳떳한 리유이다.



“츠바키문구점”에 나오는 주인공 포포는 대필가인데 익명씨한테서 절교편지 의뢰를 받았다. 두사람을 강하게 묶어두었던 우정이라는 끈을 끊기 위해 상대를 자유롭게 해주기 위한 절연장을, 거울글자의 달인인 다섯살날 녀자아이한테서 령감을 받아 상반되는 마음을 거울 글자로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성인은 거울글자에 의미를 부여하여 요긴한 아이디어로 쓰지만 우리 어린이들의 거울글자는 발육장애 부모의 긴장감으로 돌아온다.


어떤 애는 그저 피아노소리에 끌려 피아노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했지만 부모님들이 천부적재능을 발견했다며 집착을 보이고 몇십번을 반복해서 쳐야 하는 긴곡에 싫증 나서 피아노를 증오하고 그만두게 되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소리로 다가간 피아노가 어떤 이에게는 끔찍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얼굴에 박힌 짙고 옅은 점까지 똑똑히 비춰준다는 거울도 실지는 상반대되는 모습으로 체현시켜준다. 완전히 같은 쪽을 보려면 거울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거울에 지나지 않으니 진실 속에 허상이다.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장 루슬로의 시구가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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