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야기] 장날

글소리2019-06-03 09:33

덜커덩덜컹—


읍내 장터로 달리는 뻐스가 기우뚱거릴 때마다 바닥에 내려놓은 짐보따리들이 이리저리 쏠렸다.


승주는 맨 앞자리의 창가에 앉아있었다. 열린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승주의 머리카락이 날아갈듯이 춤을 추었다.


한참만에 꼬부랑길을 빠져나온 뻐스는 차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길가에 선 노란 은행나무들이 휙휙 지나갔다.


마침내 뻐스가 장터 앞에 도착했다. 뻐스에서 내린 승주는 사과상자를 들고 끙끙거리며 할머니 뒤를 따라갔다. 장마당은 벌써부터 장군들로 북적거렸다. 할머니는 곧장 장마당을 가로 질러가다가 약초파는 가게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좋겠구나.”


승주는 할머니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과상자를 털썩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서둘러 돗자리를 깔고 그우에 사과를 수북이 쌓아두었다.


약초가게 오른쪽은 널다란 공터였다. 난전가게가 열리는 그곳으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일찌감치 나온 엿장수는 구수한 각설이타령에 신나는 가위춤을 추고 있었다. 승주는 각설이타령에 어깨를 들썩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장터 한바퀴 돌아보고 올게요.”


승주는 먼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장골목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그곳에는 생활용품을 비롯해 옷, 신발, 이불 등을 팔고 있었다. 승주가 신발가게안을 기웃거리자 주인이 얼른 밖으로 나와 말을 건넸다.


“어떤 신발을 찾고있니?”


“축구화도 있어요?”


“그럼. 너 축구 잘하니?”


“이번에 우리 학교 대표선수로 뽑혔어요.”


“키도 크고 아주 튼튼하게 생겼구나. 이다음에 틀림없이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거야.”


주인아저씨가 검정색 축구화 한컬레를 승주 앞에 꺼내놓았다. 얼굴이 보름달 같은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마음에 들면 한번 신어봐.”


“아니요. 이따가 다시 올게요. 그때 신어보고 살게요.”


승주는 마음에 쏙 드는 축구화의 가격만 물어보고 밖으로 나왔다.


장터는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장사군들의 웨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장마당에는 없는게 없었다.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뻥—” 하는 소리가 장마당을 뒤흔들었다. 승주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난전가게에서 하얀 김이 구름처럼 피여오르고 있었다.


승주는 콩 본 비둘기처럼 쪼르르 달려갔다. 뻥튀기장수가 금방 튀겨낸 옥수수튀밥을 구경하던 아이들에게 한웅큼씩 나눠주었다. 승주는 공짜로 받은 튀밥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먹었다.


어느새 해가 하늘높이 솟아있었다. 승주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마당을 쏘다니다가 후닥닥 할머니한테로 뛰여갔다. 할머니는 땅바닥에 종이상자를 깔고 앉아있었다.


“할머니, 사과는 많이 팔았어요?”


할머니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웬 일인지 할머니는 아직 마수걸이(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도 못한 모양이였다. 맞은편 할머니네 버섯은 나래 돋친듯이 팔려나갔다. 산에서 캐온 송이버섯과 능이버섯은 특히 인기가 좋아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할머니, 왜 우리 사과는 인기가 없죠?”


“걱정 마라, 곧 손님이 모여들기 시작할거야.”


할머니는 사과상자에서 사과를 몇개 더 꺼냈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반짝반짝하게 닦은 다음 사과더미 우에 보기좋게 올려놓았다. 그러나 한나절이 지날 때까지 팔린 사과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였다.


풋풋한 물기로 번들거리던 사과가 차츰 윤기를 잃어갔다. 승주는 은근히 걱정이 되였다.


“저녁 때까지 사과를 다 팔지 못하면 어떡하지?”


승주는 당장 일어서서 “사과 사세요!”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승주가 손을 툭툭 털고 일어서며 말했다.


“할머니, 배고프지 않으세요?”


“난 괜찮아, 어서 가서 점심 먹고 오너라.”


“저 혼자 가기 싫어요. 그냥 사과를 먹을래요.”


승주가 사과를 하나 집어들고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선 한입 덥석 베여물고 아삭아삭 씹어삼켰다.


“와— 맛있다. 진짜 꿀맛이예요.”


승주가 호들갑을 떨며 큰소리로 말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맛있게 사과를 먹는 승주의 모습을 보고 군침을 삼키며 다가왔다.


“사과가 참 싱싱해보이네요.”


“농약을 치지 않은거니까 껍질 채로 먹어도 괜찮아요. 우리 동네에선 모두가 농약없이 농사를 짓는다오.”


“정말이예요? 그럼 서른개만 주세요.”


할머니는 야구공만한 사과 세개를 덤으로 더 주었다.


손님이 돌아가자마자 승주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할머니, 먼저 사과맛을 보여줘야겠어요. 우리 사과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사갈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맛있는 사과는 처음 먹어보는걸요.”


사실 승주와 할머니는 집에서 좋은 사과를 먹지 못했다. 늘 바람에 떨어져서 상처가 났거나 까치한테 쪼인 것이나 벌레가 먹은 사과만 먹어온 터였다.


잠시 후 할머니가 기다리던 단골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덕분에 사과는 금세 동났다. 승주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배고파! 밥부터 먹어요. 할머니!”


“그래, 어서 치우고 가자.”


할머니가 급히 일어서다가 도로 주저앉았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오래 앉아있었더니 발이 저리구나.”


할머니가 신발을 벗고 천천히 다리를 뻗었다. 승주는 얼른 무릎을 꿇고 정성껏 할머니의 발을 주물렀다. 그러다가 무심결에 할머니가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갑자기 목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낡아빠진 할머니의 신발은 승주가 신다버린 낡은 운동화였다.


승주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식당문에 들어서자마자 승주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할머니는 장터에서 사과를 판 돈을 세여본 후 신발값을 떼여 승주한테 건네주었다. 승주는 밥 한그릇을 후딱 먹어치운 후 먼저 일어났다.


“할머닌 여기서 쉬고계셔요. 저 혼자 가서 축구화를 사올게요.”


승주는 날듯이 신발가게로 달려갔다. 승주가 다시 찾아오자 신발가게주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 보고간 축구화를 살거지?”


“아뇨, 그건 다음에 와서 살게요. 대신 우리 할머니가 신을 신발 한컬레를 골라주세요.”


“알았어. 근데 발크기는 알고있니?”


“예. 제발보다 조금 작아요.”


가게주인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갈색신발을 들고와서 승주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어때? 요즘 새로 나온 신발이야. 바닥이 푹신해서 신으면 발이 엄청 편하거든.”


“좋아요. 얼른 주세요.”


승주는 행여 할머니가 찾아오기라도 할가봐 급히 값을 치르고 돌아섰다.


할머니는 식당앞에서 승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몹시 궁금한듯 말했다.


“어디 보자, 어떻게 생긴 축구화인지.”


“집에 가서 보여드릴게요. 빨리 가요. 할머니!”


승주는 할머니의 새 신발이 든 종이가방을 꼭 쥐고 깡충깡충 뛰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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