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수기] 푸른 잔디가 되리라

민족교육2019-06-27 09:15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전태옥



시간에 쫓겨 세월의 흔적을 잊고 지냈듯이 오늘따라 웬지 잔디밭을 거닐고 싶은 기분이 든다. 고3 수능시험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졸업반 애들이 졸업 릴레리를 주고 받는 시즌같은 오롯이 피여오르는 한단계 릴레이가 내게도 있다. 교단에 오른지 20년이 되여오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시간들을 어떻게 맞이할지 계획보다도 시작과 종점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하고 반추해 보게 된다.


6월의 아침은 참으로 청량하다. 교정의 대문으로 속속 향하는 발걸음들이 바빠진다. 예전같으면 시끌벅적이던 교정이 날로 조용해지니 시끄러웠던 그 때가 좋았던 것 같다. 점점 줄어드는 학생수로 민족교육이 힘들어지는 요즘 세월을 주름잡아 뒤돌아보니 혹시 20년의 시간에 열심하지 않았던 내 탓도 있지 않나 싶다.



지금에 와서 뒤늦은 후회와 새로운 다짐이 뒤엉키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함을 시간과 함께 약속을 가져본다.


드라마 <야래향>의 음악 볼륨을 더 높이고 교정의 잔디밭을 유유히 걷는다. 문득 밟아도 밟아도 계속 살아나는 잔디가 내 눈속에 들어와 이 잔디처럼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히 갈마든다.


푸른 잔디에게는 자신을 뽐낼 만한 희한한 꽃도 없다. 있는 것이란 보잘것 없는 잎 뿐이다. 단조로울만치 소박한 잎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비바람이 몰아쳐도 다음날 다시 조용히 싹트고 자라나고 사라지고 또다시 되살아난다. 이에 비추어 요즘 선생님들은 과외수업을 하여 단 시간내 적지 않은 보수를 받는 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들려 온다. 한낱 기성세대의 교원들과는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그런 알량한 량심들이 심심치 않게 비춰지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지금은 생활여건이 예전보다 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헌신이 현실적으로 여지없이 갈림으로써 현시대 아이들의 마음에 배려와 나눔이 가면 갈수록 희박해짐을 엿볼 수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스승의 역할을 홀시한 채 바른 길로 이끄는 선행이 약소해질 때 우리 교육의 앞날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가?



보슬비가 잔잔히 여운을 깔며 잔디 속으로 살며시 스며든다. 비는 어느듯 오물로 얼룩진 잔디에 덮힌 미세먼지를 걷어낸다. 그 참에 나도 한껏 심령에 파고든 오물들을 쓸어내 버린다. 누구나 참된 삶이 있듯이 소박한 잔디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푸른 삶을 펼쳐주고 받쳐주고 싶다.


산재지구에는 현재 학생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적은 학생수일수록 매 학생마다 각각 특기있고 쓸만한 재목으로 가꾸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다. 묘목이 물이 부족하여 잘 자라나지 못하듯이 제때에 가꾸지 않고 보듬지 않는다면 제대로 크지 못할 것이다. 꽃동산에 꽃을 가꾸는 원예사가 없다면 부실한 꽃동산이 될 것이고 꽃을 받쳐주는 줄기와 잎이 없다면 그 꽃은 유명무실한 꽃이 될 것이다.



손등으로 쏟아지는 해살사이로 잔디가 유난히 푸르름은 가냘픈 잔디풀이지만 그 강인한 성격과 품성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낱 보잘것 없지만 겸손한 존재로 이 땅의 푸근함을 감싸주는 잔디가 더 돋보인다. 나도 오늘 만큼은 화사한 해빛마저 슬픔으로 느껴지는 외롭고 쓸쓸한 분들을 위하여 그럴 수만 있다면 나의 여름을 기꺼이 양보하고 싶다. 날로 메말라가는 인정과 따스함을 해빛에 담아 내 미소 속에, 내 눈빛 속에서, 내 음성 속에서 문득 아픔으로 다가오는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다.



나는 푸른 잔디밭을 감회롭게 그리며 퇴직의 그 날 내 교육생애를 미루어 짐작해본다. 난 비교적 조용한 성격이다. 비록 조용하지만 침묵이 많지만 지금까지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인생사계절을 다 겪어본 체험이 나로 하여금 이 곳에 우뚝 서있게 했으리라. 잔디 또한 혹한에도 그 추위를 이겨내고 래년 봄 다시 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의 모든 것을 체험한 사람의 달관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기쁘고 슬픈 세상사를 어루만져주는 사람처럼 잔디도 그가 지닌 눈빛, 태도, 목소리에 남다른 무게를 지녔기 때문이다.



봄의 화사함도, 여름의 풍요로움도, 가을의 허허로움까지도. 잔디가 지닌 침묵으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침묵이 많은 잔디이지만 대신, 이 많은 체험이 그 침묵 속에 넘치는 언어를 담게 하였다. 그 무성의 언어를 밝은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침묵하는 잔디를 소재로 해서도 이야기가 담긴 한편의 수필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듯 푸르른 잔디 속으로 들어가 혼자 서서 덜 깬 아침잠을 먼저 깬다. 잔디의 엷은 잔가지가 속삭이고 싶어서 마음대로 속삭일 새 계절을 기다리고 있다. 파란 잔디는 내겐 들리지 않는 어떤 화음으로 이 여름의 교향곡을 열심히 작곡하고 있다.



잔디밭에서 뛰여놀던 저 아이들도 10년 후이면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자신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겠지. 그들도 이 잔디 속에서 자라고 자라 끈기있고 높게 날 수 있는 용기로 더욱 힘차게 나래칠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을 밟고 아이들도 나도 커간다…


한껏 소임을 다하고 침묵으로 밟히우는 잔디는 슬픔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엄숙한 사명감은 다시 태여남을 제시하는 윤회의 시작이다. 그것은 바로 잔디의 지성이자 자긍심이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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