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려된장술' 고고성

도랏뉴스2019-07-15 12:59

연변오덕된장술유한회사 리동춘


금년은 오덕된장술 탄생 10돌을 맞는 해이다. 탄생1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조선평양에서 “고려된장술”이 바야흐로 세상만방을 향해 우렁찬 고고성을 울린다.



새롭게 깨닫는 선물의 의미


지난 5월 중순, 조선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위원장께 조선에서 생산계획 중인 “고려된장술”을 선물로 올리고자 평양을 다녀왔다. 조선의 원료와 오덕된장술양조기술을 융합시켜 빚어내는 된장술을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조선청자기에 담아 그 첫병을 올리기 위하여서였다.  




나를 안내하는 조선동지들은 술을 선물로 올리려는 동기와 술에 담긴 사연을 편지에 담아서 함께 올리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며 나더러 편지를 쓰라는 것이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을가? 일개 재외동포기업인으로써 어찌 한 나라의 수령님께 편지를 쓰랴?!) 그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고 또 말도 안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조선에서는 작은 선물이더라도 그어떤 어지러움없이 그것에 오로지 깨끗한 마음,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면 받아준다는 것이였다. 그러면서 그 선물은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닌 나라의 보물로 보관된다는 것, 그리고 그 선물의 행위는 곧 애국, 애족의 정신적문화에너지로 승화되여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상하고 차원 높은 선물의식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에 비해 경제적인 추구에 무게중심을 실은 나의 마음이 괜히 가소로워졌다. 같은 일이지만 성스러운 마음가짐에 따라 사물의 의미가 변화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아직 높은 정신적소양을 갖추자면 한창 멀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귀국한 후 나의 일상은 쉼이 없었다. 해마다 치르는 “6월 9일 된장의 날”행사를 준비하느라 바빠도 김정은위원장님께 꼭 편지를 잘 써서 드려야겠다는 다짐만큼은 시종 나의 사유공간에서 떠나지 않았다.


6월 26일, 나는 몇번이고 또박또박 수정을 거친 편지를 소지하고 북경을 거쳐 평양행 중국국제항공CA121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과연 이번 걸음은 어떤 좋은 결실로 이어질가 하는 한껏 부푼 마음을 지니고…


통일된장술을 만들자      


오후 4시 20분, 비행기는 무사하게 평양순안국제공항에 착륙하였다. 놀랍게도 공항에는 지난번 방문차 나를 접견해주시던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참사이신 한정철동지께서 만수대창작사의 진석과장동지와 함께 친히 마중하러 나와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를 벤츠차에 안내하였다. 차에 앉자마자 한정철참사동지는 나에게 “선생님의 선물은 이미 원수님께 올려보냈다”고 하면서 이제 곧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내가 놀라워서 어안이 벙벙해하자 웃으면서 나에게 “된장술은 이미 나라적인 관심사로 되였다”고 하면서 사실의 자초지종을 말하는 것이였다.


된장술을 합작하여 평양에서 생산하겠다는 나의 의사를 상급기관에 보고하자 상급에서는 이미 된장술에 관한 내용을 자기들보다 더욱 상세히 알고있뿐만 아니라 된장술의 발명과정에 대하여서도 더 잘알고 있더라는 것이였다.



“상급에서는 진정으로 된장술을 우리 조국에 와서 생산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면, 리회장의 뜻을 이루어주라고 하면서 장차 통일술로 만들어가기로 했다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된장술을 ‘고려된장술’이라 명명하고 조국의 국주와 명주만 전문생산하는 공장인 대동강식료공장에서 생산하도록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이로써 된장술은 일약 조선의 국주대렬에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은 조국의 식품산업발전사에 길이 남겨질 기적같은 일이라고 하면서 래일 대동강식료공장을 직접 찾아가서 향후 세부적인 사업계획을 작성해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였다. 일이 이토록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리라고는 나도 그렇거니와 조선측의 동지들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넘어야 할 아리랑고개를 또 한번 넘은듯한 느낌이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김정은위원장님께 드리는 편지를 정중하게 건네주는 순간 나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살아있는 뜨거움을 느꼈다. 아! 드디여 오래된 꿈이 현실로 변하는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오래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누가 그랬던가.


평양에서 평생 뜻깊은 생일을 보내다


평양에서 와이파이료금을 지불하면 위쳇이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 위쳇을 열어보니 숱한 축하인사가 들어왔다. 오! 나의 생일날이였던 것이다. 일부러 생일날을 맞춰온건 아니지만 생일을 평양에서 지내리라고는 정말로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을 보니 5시였다. 내가 이 세상과 만나 두주먹으로 고고성을 울리던 시간이였다. 음력기준으로 55년 5월 25일 새벽 5시에 태여났으니 나의 어머니는 내가 5개의 5자를 달고 태여났다고 한다. 그러니 다섯손가락을 움켜쥐면 주먹이고, 주먹을 펴면 다 퍼주는 운이니, 그래도 남에게 주면서 사는 인생이 편안한 운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였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평양에서 나를 임신하여 6개월 만삭이 되여서 중국에 나가있는 나의 아버지를 찾아 막무가내로 중국흑룡강성 해림으로 떠났었다고 했다. 어찌보면 나의 혈맥에 조선의 DNA가 한쪼각이나마 흐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나는 호텔방창문커텐을 펼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희붐이 밝아오는 동녘하늘에 진붉은 물결이 여울지고 있었다. 뜨거운 아침해를 밀어올리는 것은 살아있는 밤의 침묵이였을 것이다. 어둠을 뚫고 곧 해가 솟아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이 평양의 굉장한 장면을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찐하게 사진찍어 두었다…



운이 좋았다! 호텔의 부페식 조찬에 마침 미역국이 있었다. 혼자 흥미롭게 생일날 아침을 먹는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무척 입맛이 돌았다. 그런데다가 워낙 입이 “하수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엇이든 없어서 못먹는 식성인데다 기분까지 업되였으니 밥을 두그릇이나 뚝딱 먹어제꼈다.


절묘함이 따라줘 참으로 좋은 날! 아침에 한정철참사동지께서 친히 나오셔서 나를 안내하여 대동강식료공장으로 업무회의를 하러 떠났다. 대동강식료공장은 김정일장군님이 생전에 친히 배려하시여 2009년 9월 29일에 세워준 나라의 국주와 명주를 전문생산하는 기업체이다. 운명을 같이 하게 될 것이라는 신의 뜻이였을가?! 된장술 역시 2009년 9월 29일에 탄생하게 되여 올해 마침 10주년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대동강식료공장의 조형철지배인과 조선술협회 최현실회장이 이미 공장마당에 마중나와있었다. 두번째 만남이라 더욱 친근했으며 옛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였다. 그들은 연변에서 보내온 원료술 샘플을 가지고 이미 자기들의 맛과 기호에 맞추어 “고려된장술”신제품을 만들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맛과 향이 연변에서 생산되는 된장술과는 좀 다르면이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입맛과 신세대가 지향하는 향에는 아주 가까웠다. 어찌보면 통일술시장으로서는 더욱 완벽함을 나타내는것 같았다. 모두가 엄지를 내밀었다. 역시 절묘함이라 하겠다. 오덕된장술 탄생 10주년의 해인 나의 생일날에 “고려된장술”이 통일된장술의 운명을 안고 합작량측의 공식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당연히 저녁은 내가 한턱 쏘기로했다. 마침 라선특별구   흑룡강성대표처의 오기호대표도 평양에 일보러 왔다가 합류하였으니 분위기는 더욱 화끈하였다. 여러 지인들의 축복 속에서 태줄을 심은 고향인 평양에서 추억을 남길만한 생일파티를 보냈다.


요즘은 문화시대,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한다. 생생하고 재밌는 이야기, 감동적이고 뜻이 있는 이야기가 짙을 수록 그 사물의 의미와 그속에 담긴 매력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고려된장술이 통일된장술로 발전되여 나아가는 과정에 더욱 즐겁고 건강한 이야기가 분수령처럼 솟아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9년 7월 8일 새벽, 연길에서



댓글 쓰기
0 /255
게시
사용자 평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