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이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도랏뉴스2019-10-22 09:04

딸아이가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 12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감옥과 같은 학교에 갇혀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은 거의 하나도 못하고 살았겠지. 대학에 가면서 딸아이가 가장 관심 가지는 것은 동아리 활동이였다. 수많은 동아리 중 딸아이가 고심 끝에 선택한 동아리는 학교박물관 해설지원자 동아리였다.


“ 잘 선택했어! 영어해설과 러시아어 해설을 하면 되겠네...”


“아니, 조선어 해설도 할거야!”


“니가?.... 할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딸아이는 내향적인 성격이고 소심한 스타일이다. 딸애로부터 이런 자신감 넘치는 얘기는 일년중에 한번 듣기도 힘들다. 면접에 합격되든 탈락되든 결과에 상관없이 듣던중 반가운 말이였다.


딸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사실 좀 놀랐다. 어려서부터 한번도 우리말을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우리말을 꼭 배워야 한다고 강요한 적도 없었다. 아이가 누군가로부터 정식으로 우리말을 배운적도 없었다.


그런데 초중쯤부터 한마디 두마디 우리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고중이 되니 한국 놀러가도 혼자서 잘 돌아다녔다. 한어가 류창하지 못한 할머니랑은 언제가부터 우리말로 얘기를 나눈다. 내가 엄청 바랐던 일이지만 꿈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자기 민족의 언어를 의사소통정도수준으로 배우기는 참 쉬운 일인 것 같다.


자료사진


사실 딸아이에게 우리말을 가르친적도 가르칠 생각도 없었다.


나는 왜 아이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한 사람의 인지는 자신의 인생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연변에서 자라 고중까지 조선족 학교를 다녔다. 게다가 어머니는 조선어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였다. 어려서부터 조선어로 출판된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러시아 류학시절에는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고려인 도서관의 한국책 수백권은 읽었었다. 조선어문 성적도 상위권이였고 작문도 꽤나 잘 쓴다는 평을 받았었다. 우리말을 특별하게는 잘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중상위 수준은 되였던 것 같다. 적어도 조선어문 성적은 상위권에 속했으니까.


그런데 러시아 류학을 마치고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나의 우리말 글쓰기 수준이나 언어표현능력이 한국 고등생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초중학생 수준에나 간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또 다른 충격도 있었다. 한국에 있는 내 또래 나이의 젊은이들중 중국에 관심이 좀 있는 친구들은 중국문화와 력사와 지리에 대한 리해가 나보다 깊고 폭도 넓다는 사실이였다.


중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중국력사와 문화에 대한 리해가 외국인들보다 못하고 유치원부터 조선어문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초중생보다도 언어 표현 능력이 약하고. 그럼 내가 받은 교육은 도대체 무엇이지 하는 지난 세월에 대한 자괴감과 회의에 빠졌다. 사실 그때부터 중국문화와 력사, 우리민족 문화력사에 관한 공부를 죽어라 했던 것 같다. 이런 공부들이 나의 생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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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자라서 중국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한어수준도 형편없었다. 어려서부터 수천권의 무협지를 읽어서 고중 다닐 때는 그래도 한어를 잘한다는 평을 들었고 한어작문은 여러차례 학교에서 모범작문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한어작문 수준도 한족학교 초중생들에 못미친다. 읽고 듣고 리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어도 그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는 력부족이였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자발적 용어(积极词汇)’와 ‘피동적 용어(被动词汇)’라는 개념이 나온다. ‘피동적 용어’는 내가 읽고 듣고 리해는 하지만 능수능란하게 표현에서 쓸 수 없는 단어들이다. 하나의 언어를 장악하는데 있어서 ‘자발적 용어’의 수가 그의 언어수준에 엄청 큰 영향을 끼친다. 한어나 조선어나 내가 장악한 ‘자발적 용어’가 굉장히 적었었다. 내가 경험한 언어교육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였다. 하나도 제대로 하는 언어가 없었다. 언어능력의 결핍은 생존문제와 직결되였다. 제대로 된 그럴듯한 문장 하나를 써낼 수 없었다.


언어는 또 소통의 도구로만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심층적인 가치가 있다. 특히 한사람의 모국어, 제1언어(第一语言)는 그 사람의 사고의 깊이와 폭 그리고 높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사람의 사고 능력은 언어의 제한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제1언어의 질이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언어는 단지 소통의 도구뿐이 아닌 사상의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각인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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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생기고 굉장히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많은 내적 갈등을 거쳤다. 나의 피줄을 가진, 나의 DNA를 가진, 나의 분신인 아이가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한 아이이길 진심 바랐다. 그러나 또 언어로 인한 여러가지 장벽을 경험하지 않길 바랐다. 더우기 나의 언어습득의 실패가 아이의 삶에서 재현될가봐 걱정이였다. 언어의 한계가 아이의 사상의 크기를 제약하는 벽과 천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연변에 있는 조선족학교에서 우리 말교육을 받게 하더라도 나와 똑같은 언어의 한계를 느끼지 않게 키울 자신은 전혀 없었다. 나의 평균수준에 겨우 미치는 아이큐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가 나보다 뛰여날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일단 우리 민족의 언어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한가지 언어는 제대로 배우게 하고 싶었다.


다른 하나의 리유는 한 사람의 정체성은 자기가 주체가 되여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부모라 하여도 내 피줄을 타고 났다고 해도 내가 아이의 정체성을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체성은 자신이 고민하고 자신이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나의 피줄을 물려받은 아이가 나와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가지고 같은 문화적 유전자를 공유할 수 있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로서의 의무이다. 그러나 강요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정체성은 강요로 생겨나지도 않고 강요된 정체성은 일종의 허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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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처남은 모두 18살까지 우리말 우리글을 전혀 모르고 자랐다. 성인이 되면서 자신의 민족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자습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또 우리말과 우리글이 그들의 생존문제와도 상관이 없는 그냥 선택사항이였다. 그래도 이제는 꽤나 잘하고 처남은 한국에서 대학원과정을 마쳤는데 영어와 우리말을 섞어가면서 훌륭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딸아이에게 우리말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우리민족의 력사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늘 이야기를 나눴다. 또 족보에 따라 한무제 시기의 흉노왕자 김일선과 김수로왕의 련계성과 허황옥 황후의 가족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떠나 기나긴 세월 정착했다가 또 다시 가야국에 도달해서 김수로왕과 결혼했던 국제 련애 로맨스. 그리고 허황후 이주의 문화적 흔적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인도에 남아있는 쌍어문 문양 등의 우리 가족의 유래와 력사에 대해서도, 또 김해김씨의 중흥시조인 김유신 장군에 대해서 그리고 김해김씨중 우리 문중이 속한 김해김씨 삼현파 군수공파의 내력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상히 알려줬다. 가능하면 자신의 뿌리야 알아야지 않겠는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딸아이도 나름대로 자신의 정체성 문제를 가지고 약간의 고민이 있었나 본다.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면 이 세상 어디에서 사나 모두 만나는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언제가부터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사이에 학교 박물관 조선어 해설원에 도전해보겠다는데까지 이른 것 같다. 당연히 딸아이가 우리말을 익히게 된 가장 큰 공신은 한국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이겠지. 그 공로를 가로채고 싶지 않다. 가로 챌 수도 없고.


딸아이가 조선족학교에 다닌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말이 엄청 많이 서툴다. 그렇다고 우리 문화와 력사에 대해 그들보다 적게 아는 건 아니다.


지금 정도의 우리말 수준을 갖춘 것만 해도 나는 딸아이에게 너무나 고맙다.


우리말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하면 우리말 가르친 것이 되는가? 조선어문학과 대학원정도? 작가나 시인 수준?


딸아이에게 우리말 가르치지 않은 것 후회는 하지 않는다.


/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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